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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중수 상량문(초의선사 작)

 

표충사 중수 상량문
* 2007.10.14. 松廣寺 廣遠庵 南隱玄鋒 譯
 
일찍이 듣건대 위대하신 성인(聖人)은 중생을 불쌍히 여기시어 유리왕(琉璃王)의 혹심한 더위도 금새 푸른 나무 그늘 가에서 사라지게 하고, 신령하신 스님은 발라기(鉢羅器)의 정령(精靈)을 푸른 하늘의 구름 가에서 저절로 떨어지게 하였다.
무릇 숙세(宿世)에 얽힌 원한의 빚도 신통(神通)에는 아무 소용(所用)이 없다 하지만, 어찌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한바탕 운용(運用)하여 영원히 우리 동국(東國)이 만년토록 안녕(安寧)하게 하신 것과 같으리오?
 
선사(先師)의 아름다운 공적(功績)이 절묘(絶妙)한 좋은 문장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을 계고(稽考)한다면, 지금 소자(小子)의 누추(陋醜)한 글은 빠진 것을 수습(收拾)하여 보완하는 정도인 것이리라.
 
미루어 생각하건대 대덕(大德)은 간기(間氣)에 모습을 드러내신 중화(中和)의 품질(稟質)이시니, 가슴 속에 가득한 노을빛 그림자를 다박머리 어린 시절의 균포(筠袍: 푸른 대가 될 어린 죽순 껍질. 즉 어린 아이들이 입은 옷) 속에 드러내시고, 높은 국량은 서리처럼 서늘하여 쌍뿔 머리 묶은 어린 나이에 난초 같은 향기를 응축(凝縮)하시었다.
 
이리하여
예악(禮樂)을 쭉정이처럼 가벼이 여기시고 명교(名敎)도 하찮게 생각하시니,
음양(陰陽)이 없는 땅 위에 진작부터 솟아있던 푸른 나무요,
소리쳐도 메아리 울리지 않는 골짜기에 의연(毅然)히 타오르는 듯한 붉은 꽃잎이었다.
 
마침내
현묘함을 막아 가리어 자취를 숨기시고
텅 비어 깨끗한 곳에 앉아 소리마저 잠재웠으니,
선정(禪定)의 물에 물결이 안정되어
밤에는 온 하늘의 별과 달이 비치고
맑은 바람에는 운치가 있어
새벽의 모든 골짜기마다 생황(笙簧)과 종소리 감미로웠다.
 
발꿈치가 땅에 점찍게 되는 때가 바로 콧구멍이 하늘을 뒤흔드는 날이니,
한음(翰音: 새가 높이 우는 소리)이 난간에 높게 오를 제 지혜의 해가 성천(性天)을 밝게 비추었고 <서산대사가 낮닭이 우는 소리에 도를 깨달음을 말함>
바람 부는 찰간(刹竿)에 깃발이 나부끼면 법의 우레가 의해(義海)를 진동하며 놀라게 한다.<육조스님의 깃발 이야기>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니
곧바로 임제(臨濟)의 가풍(家風)을 전하고,
밝음도 때리고 어두움도 때리니
일찍이 경산(徑山)의 수법(手法)을 갖추었으며,
당시에 빈신(嚬呻: 낯을 찡그리며 크게 울부짖는)의 사자후(獅子吼)로
간곳마다 소리쳐서 야호선(野狐禪)을 흩어버렸네.
 
동쪽의 해가 목욕하는 바닷가<일본을 말함>에서
요사스런 무리들이 개미떼처럼 모이니<왜구들이 침노함>
고죽곡(孤竹曲) 소리에 운문(雲門)의 춤을 즐길 때에
흉한 괘(掛)가 거북이 등에 드러났으며,
마침내 변방에서 올린 불빛이 감천(甘泉)에 비치고
장락궁(長樂宮)에는 음악소리가 사라지게 되었다.
 
사태가 다급하여 임금의 수레가 멀리 피난가게 되고
형세가 위태하여 조야(朝野)가 위험에 임박하게 되었다.
 
아! 불도(佛道)는 평소에 중생을 이익 되게 함이 간절하나니,
이런 때에 그 어찌 세상(世上)의 구제(救濟)를 늦출 수 있으리오?
 
단심(丹心)의 충성(忠誠)으로 불전(佛前)에 간구(懇求)하니
만다라(曼多羅)의 궤칙(軌則)이 정엄(精嚴)하고,
법의 지팡이가 하늘가에 기대니
금강검(金剛劍)의 신령한 칼날이 날카로웠다.
 
모란봉(牧丹峰) 아래에서 왜구(倭寇)를 초멸(剿滅)하고
임금의 수레를 금란전(金蘭殿)으로 모시고 돌아오는데,
짐승 새긴 향로의 입에는 연기가 피어나 행궁(行宮)의 서기(瑞氣)를 빚어내고
지휘봉 머리에는 바람이 일어 돌아오시는 길의 요사(夭死)스런 기운을 쓸어내었다.
 
 
돌이켜보건대
이 신공(神功)은 무릇 성덕(聖德)에서 말미암았으니
드디어 400년의 홍조(洪祚)를 영원히 안한(安閒)케 하시고
억조(億兆)의 집집마다 창생(蒼生)들이 다시 밭 갈고 샘을 파는 생업(生業)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러한 뒤에
지팡이 짚고 구름 깊은 골짜기로 돌아가시며
소매에는 하늘의 별들을 뿌리치셨다.
이미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와서는 유위(有爲)의 업은 말씀하시지 않으셨고
벌써 인연을 잊고 스스로 고요하시니 누가 무물(無物)의 공(功)을 논할 수 있으리오.
그런즉 상투를 풀어 헤치는 상(賞)을 어찌 베풀 수 있겠는가?
땅을 떼어 봉(封)하는 것도 쓸 데 없었네.
 
아! 증삼(曾參 : 曾子. B.C. 505-B.C. 436.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 공자의 제자)이 양보함은 교만함을 꺼리는 염려 때문이요
노중련(魯仲連 : 전국시대 齊나라 웅변가)이 사양함은 청렴(淸廉)한 절개를 상할까 두려워해서였네.
그러나 그것을 어찌 우리 스님의 염절(廉節: 청렴한 절개)과 외교(畏憍: 교만을 꺼림)를 마음에 두지 않고 사양(辭讓)과 공려(恐慮: 두려워하고 염려함)를 모두 잊으신 것과 같은 처지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임금님의 은혜가 특별히 깊으시고
성은(聖恩)이 유독 칭송하시어
은한(銀翰: 깨끗한 종이)을 물들여 덕을 펴 적으시니
신장(宸章: 임금님의 문장)이 남북의 명산(名山)<묘향산과 대둔산>에 아울러 빛나고
황금 편액(扁額)을 내리시어 충성을 표창하니
천향(天香)이 춘추의 영절(令節)에 계속 내리었네.
 
어찌 오직 곤룡포(袞龍袍)를 씻지 않은 것이 혜소(嵇紹)의 임금 모시던 핏자국을 오래 남기고<진(晉)의 혜제가 피난하다가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혜소가 적을 막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고 혜소의 피가 곤룡포에 묻었는데 혜제는 그 피를 씻지 않았다>
기린각(麒麟閣)에 공신도(功臣圖)를 그린 것이 무루정(茂婁亭)의 팥죽을 영원히 생각하려고 그러했겠는가?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무루정에서 추위 속에 굶주리고 있을 때 풍이(馮異)가 팥죽을 올려 황제가 추위를 면했다는 고사(故事)>
 
이에 사당을 지을 길지(吉地)를 살피고
옛 절의 신령한 터를 꾸미었는데,
두 줄기 수놓은 봉우리가 아름답고 미묘하게 안으로 돌고
반 바퀴의 밝은 달이 새로이 신기하게도 앞에 드리웠으니
이치가 당연하게 들어맞고
영험이 탈 없이 감응하였다.
 
도광(道光) 병신(丙申 : 1836년)년에 이르러
말 한마디가 잘못 떨어져 두 전각이 옮기게 되었다.
이에 신사(神祠)는 현무(玄武: 북쪽)를 걸터앉게 되고
불전은 오른 쪽 언덕에서 호표(皓豹: 白虎 오른쪽)를 의지했으니
상하가 거꾸로 매달림이 이렇게 극심하여
춘추의 척강(陟降: 신령의 오르내림)이 편안치 않았다.
 
앉아계신 자리의 화촉(華燭)이 한갓 휘황(輝煌)하고
향로 위의 향 연기는 부질없이 흔들리며 피어올랐으니
어찌 할 수 없는 사문(沙門)의 몽매(瞢昧)함이 한스러웠다.
 
이에 신령이 옥관(玉觀)의 혼교(魂交)함에 의탁하여
거꾸로 된 것을 바로 하라는 말씀이 정녕하고
가르침을 따르려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이에 그 잘못된 이유를 옥국(玉局)의 소선(素仙)에게 알리고
주사(籌司)의 철장(哲匠:大臣)에게 바른 뜻을 전하고 논하였다.
 
두 소장(訴狀)이 겨우 올라갔으나
삼년동안 어려움이 생기어<전염병이 만연>
경산(京山)은 헐어져 승려들이 살 집이 없게 되고
왕성(王城)은 죽은 송장이 가득히 널려져서
거리에는 사람들의 자취가 사라지고
묘당(廟堂)에는 정사(政事)도 멈추게 되었다.
 
기미년(己未年 : 1859년) 겨울이 훌쩍 넘어가고
경신년(庚申年 : 1860년) 봄도 그럭저럭 지나고 나서
막혔던 구름이 중려(仲呂: 12겹)의 궁중(宮中)에 높이 걷히어
경영하라는 글이 멀리 거행되고
쌓이던 비가 소양(昭陽: 甲 으뜸)의 전각(殿閣)에 새로 개이어
천은(天恩)이 농후하게 내리었으니,
이것이 주사(籌司)에 건백(建白)하고 입계(入啓)하여 윤허(允許)를 입게 된 소이(所以)이다.
 
이미 화천(貨泉: 財源)을 임금께서 허가(許可)하시며 독촉이 엄중하시어
중수(重修)의 공역(工役)을 감독함에 시각을 늦출 수 없었다.
바람같은 자귀와 달같은 도끼에 별똥이 튀고 서리가 날며
수놓은 서까래와 아로새긴 문설주는 난새가 날개를 펄럭이고
학이 높이 날아오르는 듯하였다.
남쪽 산은 도리어 대웅전의 우뚝함을 바라보고
북쪽의 대궐은 바로 좋게 엽부(葉鳧)의 조종(朝宗)이 되었다.
 
일의 시작은
서리 소식을 높은 하늘의 기러기가 알릴 때이고
마칠 때는
무지개 대들보가 눈 내린 골짜기에 용처럼 날아올랐다.
노을빛 처마는 높게 빼어나서
은혜로운 해가 아름다운 난간에 은총의 빛을 내리고
죽원(竹院)은 텅 비어 깊어서
상서로운 구름이 겹겹 마루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에 감히 좋은 노래를 펴서 서로 즐거이 노래한다.
 
들보를 던지는 동쪽에
가년봉(迦年峰) 빛갈은 푸른 허공 찌르면서
동쪽 바다 천만리를 모두 다 눌렀으니
왜인(倭人)들을 귀화(歸化)시켜 흉한 칼날 넘어졌네.
들보를 던지는 남쪽에
밝으신 임금 은혜 남녘에서 깊이 입어
보배 게송 찬상(讚賞)하고 만수무강 기도하며
백호(白毫)의 광명 속에 소리 높여 축원하네.
 
들보를 던지는 서쪽에
소림(少林)에서 직지(直指)하며 제창(提唱)하듯 하신 것은
처음 오신 그 뜻을 깨우치려 하심이니
한 점의 밝은 빛이 진흙에서 솟아나네.
 
들보를 던지는 북쪽에
고불(古佛) 속에 함께 모신 미륵불이 계시니
보살의 하생(下生)이 더디다고 싫어 말라.
알고 보면 염부제(閻浮提)가 모두 다 극락이네.
들보를 던지는 위쪽에
삼십삼천(三十三天) 하늘을 모두 다 회향(回向)하니
나라 지킨 사천왕(四天王)은 백성 위함 간절하니
절만 있고 불상(佛像) 없어 한이 됨을 누가 알까?
 
들보를 던지는 아래에
옥발우(玉鉢盂)와 금란가사(金襴袈裟) 빛을 서로 비추니
남쪽으로 옮기라고 유명(遺命)하신 깊은 뜻은
정령(貞靈)이 대궐 향해 치우치지 않게 했네.
 
엎드려 바라옵나니,
상량한 뒤에
법의 바다는 더욱 맑고 부처의 등불은 높이 비추며
그 물을 긷는 이는 몰록 반야(般若)의 인연을 이루고
그 빛을 잇는 이는 보리(菩提)의 원을 깊이 발하며
금상옥궤(金牀玉机)에 오래토록 담복화(薝蔔花) 향기 서리고
봉황(鳳凰)과 용(龍)같은 자손들은
난초(蘭草)의 대열에서 길이길이 빼어나소서.
 
함풍(咸豊) 10년(年) 경신(庚申: 1860년)
양월(陽月: 10월) 대설(大雪) 25일(日)에
초의(草衣) 의순(意恂)은 삼가 글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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