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사는 서산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고 그의 선풍이 대흥사에 뿌리 내리게 한 은덕을 추모하여 제자들이 1669년에 건립한 사당이다. 청허당 서산대사를 주벽으로 그의 제자인 사명대사와 전라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운 뇌묵당 처영대사를 배향하고 있다.
사찰 경내에 유교형식의 사당을 겸한 예는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독특한 경우에 속한다.
이곳은 부처의 삼보도량 가운데 하나인 승보(僧寶)를 존중하고 받드는 불가의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구현된 공간이다.
건물의 배치는, 돌담의 안쪽 중앙에 북향(北向)으로 사당이 있고 그 좌우측 아래편에는 조사전(祖師殿)과 표충비각(表忠碑閣)이 각각 자리잡고 있다. 표충사 외곽에 있는 재실 건물이던 의중당과 강례재 주위에 담을 두르고 솟을삼문을 세워 사문(祠門)으로 삼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나직한 1단의 기단에 원형 주춧돌을 놓고 민흘림의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로는 창방을 돌리고 장여도리가 결구되었으며, 주심포계 익공식의 포작으로 보와 지붕 위에 쇠서가 보인다.
창호는 3칸 모두 2분합인데 띠살문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을 바람막이판이 있고 겹처마이다.
표충사 경내에는 별도의 비각이 있는데, 비각 내에는 2기의 비가 있다.
이 중 1기는 표충사건사적비로 높이 316㎝로 사각형 비좌에 비신과 이수를 갖추었다. 건립연대는 「성상십육년임자오월일, 서산육세법손연담유일근찬, 응운등오근서(聖上十六年壬子五月日, 西山六世法孫蓮潭有一謹撰, 應雲登旿謹書)」란 내용으로 보아 정조 16년(1792)이며, 찬자는 연담유일, 글씨는 응운등오가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른 1기는 서산대사표충사기적비로 높이는 364㎝이며 사각형 비좌에 비신과 사각형의 지붕돌을 올렸다. 건립연대는 비신측면에 「숭정기원후삼신해월립」이란 명문으로 보아 정조 15년(1791)임을 알 수 있다. 청허당 유정은 임진왜란 때 80노구를 이끌고 구국운동의 선봉에 나서 활약한 승병대장으로 선조가 「국일대선사교도총섭부종수교보제등계존자」란 긴 호를 내렸다.
표충사는 정조 12년(1788) 왕이 표충사라 사액하였으며 대사의 7세법손인 천묵에 의해서 건립되었다. 나라에서는 매년 예관과 헌관을 보내 관급으로 제향케 하였다.
비각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내부에 서산대사와 건사사적비(建祠事蹟碑)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조사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전각(殿閣)이다. 그 밖에 경내에는 의중당, 명의재, 강례재 등의 건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