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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보장록(번역본)

표충사 보장록(한글 번역본)

 

우리 선사 청허당의 법휘는 휴정이며 字는 현응이고 또 호는 서산이다.

속성은 최씨요 계적은 완산이며 안주에서 살고 있었다. 부휘는 세창이며 기자전 참봉을 지냈다. 母는 金氏이고 1520年 탄생하시었다. 선사에게 異夢이 있었는데 홀연히 한 노인이 와서 말하기를 小沙門 운학을 찾아왔다 함으로써 이름을 운학이라 하였다. 장성하여 출세함에 신장이 구척이요 안색이 백옥같았다.

1540年에 숭인장로에게 삭발하고 일선화상에게 戒를 受하고 영관대사

에게 法을 廳하였다. 南으로 두류산(지리산)에서 지내다가 도가 더욱 융고하여 낙엽에 시를 써서 이르되 머리털은 희어도 마음은 희지않다함은 고인이 이미 누설하였도다. 이제 닭 우는 소리를 들으니 장부의 능히 할 일을 마쳤도다. 이로부터 운수납자로 산천을 두루 편답하다가 己酉年(1549년)에 우연히 京師에 들어 선과에 응하여 선교양종판사에 선임되었다.

 

己丑年(1589年)에 요승무업의 무고로 인하여 옥에 갇혔는데 夷令에 따라 상대왕 주상전하께 알현하니 紫香이 훈훈하고 聲名이 늠늠한지라 주상께서 즉시 입시를 명하니 선사께서 사리가 명백하고 名區에 달한지라 經文에 白書하되 주상전하 수만세, 왕비전하 수제년. 세자저하 수천추, 位牌를 봉안하고 축수함은 선사께서 시작하여 불가에도 역시 忠君의 성의가 있음을 명백히 한지라 주상께서 역도로 하여금 眞蹟을 조사케 하시고 흔연히 사면하고 어화묵죽 일폭에 絶句一首를 하사하시었다. 선사가 詩를 지어 사은하니 주상께서 더욱 칭찬하시고 상을 후대하여 환산케 하시었다. 그후 임진년 (1592年) 일본 왜적이 난을 일으켜 아국을 침입하니 주상께서 의주로 파천하시니 선사가 묘향산으로부터 내려와 大駕를 順安地에 영접하시었는데 주상이 말씀하시되 昔高麗時는 원효 의상도 國事를 보좌하여 萬歲竹帛의 공을 세웠거늘 이제 대란이 있으니 산인도 가히 더불어 홍제함이 어떠할고 선사가 눈물을 흘리며 아뢰되 신이 만번 죽사온들 어찌 주상 성은의 망극함을 저버리오리까? 주상이 크게 기뻐하시며 팔도십육종도총섭판병승의병대장을 명하시어 토벌에 협찬케하시니 선사가 즉시 문도및 자모승일천오백여명을 관서해서 양도에서 기병하고 제자 유정이 관동에서 7백승을 거느리고 제자 처영은 일천여승을 거느리고 호남에서 合하여 四千여명의 승병이 전격적으로 順安에 회집하였다.

명군으로는 뒤를 따르게 하고 우선 평양 모란봉 밑에서 접전하여 적 수천급을 참하였으나 승병은 1인도 실수가 없었다. 명나라군이 평양을 追剋함에 그후 송도 경성에 적이야 간을 타서 도망하였다. 계사년(1593年)에 선사가 승병 7백명을 별선하여 大駕를 맞아 京師에 환도케하시었다.

주상전하께서 자주 선사께 입시를 명하여 은근히 위유하시니 선사는 눈물로 사은하시었다. 명나라 도독 이여송이 상견하고 그 儀表의 장엄함과 그 忠義에 敬仰하며 帖으로써 칭찬하고 장려함이 국가를 위하여 적을 치니 충성이 관일 하도다

경앙함을 이기지 못하여 시로써 이르되 “功利를 도모하는데는 말이없고 專心으로 道와 仙을 배운다. 오늘에 王家의 일이 급하니 모두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도다. 그 누가 先을 다투지 아니하리오. 송첩이 이와같은 고로 명성이 중원에 들려 한번 보기를 원하더라. 선사는 입으로 공을 말하지 아니하고 제자들은 경계하여 나라에 충성함의 정성에 勤勉竭力하기를 권하더라. 연세80에 주상께 啓字를 물어 아뢰되 臣이 근력이 쇠진하여 聖敎에 부합지 못하고 두렵사오니 청컨대 군사를 분속하여 유정으로 총통을 삼아 북방을 맡기고 처영으로 남방을 지휘케 하고 모든 승병으로 하여금 영을 듣게 하소서 하시니 주상께서 그 정성을 아름답다 하시며 그 노쇠를 민망히 하사 號를 賜하여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부종수교등계보제존자라 교지를 내리시고 還山케 하시니 선사께서 사은하시고 퇴서 한거하더니 이때에 왜병이 動兵에 피곤하여 화해하기를 청한지라 주상께서 선사께 下議하시니 선사께서 유정을 천거하여 일본에 보내게 하시고 사사로이 유정께 부탁하여 말하되 만리창해에 국가를 위하여 효성함이 하나라도 실수가 있다면 왜국이 업신여길테니 만일 도술의 영험함이 없다면 어찌 아국의 피로를 내주리오. 유정으로 미리 금강경을 예송하여 왜왕의 질문에 응하라 하시고 또 符字를 써서 물을 뿌려 鐵火馬의 急을 멸케하였다. 그 부자를 품고 가서 鐵火所에 던져주고 버티고 앉았더니 그때에 왜왕이 크게 두려워하며 유정을 부처님같이 대접하고 아국의 포로 3천구를 환출하였다. 선사의 명험이 이와같이 著盛하였다. 오호라 갑진년(1604年 1月23日) 선사가 입적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유촉하여 이르되 지금 내가 입적한 후에 의발을 호남도 해남현 두륜산 대흥사에 전하라. 因하여 忌日에 奉所케하고 (-)은 萬右忠勤의 功을 계승케하고 (-)은 千秋에 효혁의 치적을 보존케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부복하여 말하되 문도가 장차 천여명이나 되는데 문도에게 전하지 아니하시고 금강산 묘향산이 국내의 명승인데 무슨 의향으로 두륜산으로 전하라 하시나이까. 선사 이르되 너희들이 내 말의 소재를 알지 못하느니라. 두륜산은 僻在海隅에 있어 명산은 아니나 내가 세가지 이유가 있어 소중히 하는것이다 (-)은 기화이초가 항시 볼 수있는 광경이요 포백숙속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없어지지 않으니 두륜산은 즉 亘長의 區라 북에는 월출산이 있어 하늘을 괴이는 天柱가 되고 남에는 달마산이 있어 지반을 다지고 지축이 되어있다 東에는 천관산 천관선녀가 西에는 선은산 천상선인이 홀연 상대하고 해악을 위호하고 洞府 심수하니 차측 만만세동안 훼손되지 않는 지역이라

(-)은 왕화천리에 緩急이 未暨하여 普天下에 王士아님이 없는데 국가에 충성 일으키기가 매우 어려운지라 나의 공적이 별것은 아니나 성주께서 이것을 보시고 감동하시면 후세에 어찌 어리석은 생각을 깨우칠 風聲을 세우지 않겠는가 (-)은 처영 및 제자들이 다 남방에 있고 즉 내가 출가하여 머리 깎고 법을 두류산에서 들었다. 此는 宗統의 所歸處가 참으로 중하지 않은가? 이 삼절로써 나의 뜻이 조정되었다. 너희들은 내 유촉을 준하여 나의 의발 및 주상께서 하사하신 대선사 교지를 두륜산중에 이장하여 입적의 日에 奉所케 하라. 제자 명조로 하여금 차사를 주관케하고 제자 유정에게 付書하여 後事를 부탁하고 분향하고 설법하되 영정에 자서로 말하되 80年前 渠是我 80年後 我是渠라 가부좌하고 化하니

연세는 85세요 臘은 67이다. 異香이 방에 가득하여 3,7齊後 시헐한지라 제자들이 영골과 신주를 금강산 묘향산 및 諸山에 봉안하고 一方으로 유언을 따르게 하여 제자 명조가 주관하여 금란가사와 백초장삼 벽옥발우 三合칠보염주 三組 차거유리배 및 교지를 두륜산에 전장하고 因하여 法門종파를 삼고 기일제에 主奉하고 千秋에 영원히 제사지내게하고 일방으로는 선사의 經蹟을 차례로 정리하여 후세에 깊이 느끼도록 하고 일방으로는 선사 유촉을 봉하여 百代長久의 뜻을 이루어 寶藏傳統하고 열심히 지키며 바꾸지를 않겠노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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