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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암(挽日庵)


만일암(挽日庵) 
만일암은 두륜산의 가련봉 아래에 있는 암자로 대둔사의 여러 암자 중에서 지세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옛날 기록과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만일암 이 비록 암자에 속하지만, 대둔사가 처음 시작된 곳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하여 다산은 『만일암지』에서 '유송(劉宋) 때 정관존자가 창건하고, 소량(簫梁) 때 선행대덕이 중건하였다'고 기록하면서, 이는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강희 14년(1675)에 융신선사(融信禪師)가 중건하고, 현기화상(玄己和尙)이 강희 말년에 중수하였으며, 응명두타(應明頭陀)가 건륭년간(1736-1795년)에 중수하였다. 이후 가경 14년(1809)에 자암전평(慈菴)과 은봉두예(隱峰斗芸)가 또 다시 중건하였는데, 이것은 믿을만한 사실이다. 지금 암자는 무너져 없고 그 터만 남아 있다. 

만일암에서는 만화원오(萬化圓悟), 연해광열(燕海廣悅), 금하우한(錦河優閒), 금봉희영(禽峰僖永), 백화찬영(白花贊英), 지월정희(智月鼎熙), 응성민훈(應星旻訓) 등의 여러 고승들이 머물렀다. 
암자터 주변에는 오층석탑, 연자맷돌, 석등, 샘터 등이 남아 있다. 

『만일암지』에는" 7층석탑이 있으며, 그 탑은 아육왕이 세웠기 때문에 아육왕탑이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오층의 석탑은 석등의 옥개석을 상륜부에 올려놓은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7층탑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전설에 의하면, 정관존자가 만일암을 창건할 때 암자보다 탑 먼저 세웠다고 한다. 탑을 완성한 후에 암자를 지으려니까, 해가 서산 너머로 기울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해가 지지 못하게 탑에 묶어 놓고 암자 세우는 작업을 계속했는데, 암자를 완공 한 후에 암자명을 잡을 (挽)자와 해 (日)를 써서 만일암(挽日庵)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석탑 앞에 있는 샘터는 배수가 잘되지 않아서 물맛은 좋지 않다. 이 샘은 원래 음양의 조화를 고려하여 음 양수 샘을 만들었다고 한다. 암자터 아래쪽에 암 수의 괘목 나무가 서 있는데, 이것을 고려하여 음 양수 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괘목나무가 두 그루였는데, 한 그루는 죽고, 한 그루만 남아 있다. 식물 학자들은 이 나무의 수령을 천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래서 이 나무를 천년수라 부른다. 어쩌면 이 나무의 나이테가 곧 만일암의 역사라 할 것이다.

[자료출처 : 대둔사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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