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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회주 보선 스님. 법보신문 인터뷰입니다.

  • 교무과장
  • 2012-12-17 오전 8: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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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회주 보선 스님
해남서 백두까지 출세간 경계 헐고 땅끝 마을에서 ‘화엄 도량’ 꿈꾸다
2012.12.11 14:44 입력 발행호수 : 1174 호 / 발행일 : 2012-12-12

‘반야심경’에 마음 끌려
고교 졸업 직후 출가
은사 천운 스님 모시며
명실상부 본사로 ‘우뚝’

 

 

 

▲무염지(無染池) 전경. ‘더러운 곳에 있어도 오염되지 말라’는 처염상정(處染常淨) 의미를 담고 있는 연못이다.

 

 

땅 끝 해남에도 동풍(冬風)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나 대흥사 숲길에 접어 든 순간 겨울바람은 퉁소가 빚어내는 멋스러운 가락으로 바뀌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저마다 제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가지를 한 없이 흔들어 낸 화음이다. 화려했던 단풍마저 거둬 간 숲은 이렇듯 찬바람마저 무상(無常)의 소리로 다듬어 다시 내어 보이고 있다.


무염지(無染池)가 청송 한 그루를 담고 있다. ‘더러운 곳에 있어도 물들지 말고 항상 깨끗이 있어야 한다’는 처염상정(處染常淨) 의미를 담고 있을 터. 연못가를 걷는 동안에라도 번뇌 하나 내치면 좋으련만 허접한 번뇌만 밀려올 뿐이다. 서산 스님의 시 한수 연못 위에 띄우며 번뇌 하나 밀어내려 애써본다.

 

스님과 산, 물 이 셋은 지기이고 (승겸산수삼지기 僧兼山水三知己)/ 학과 구름과 소나무는 같은 세상에 서 있네 (학여운송일세간 鶴與雲松一世間)/ 텅비어 고요한 본심 알지 못하면 (허적본심여불식 虛寂本心如不識)/ 이생에서 어찌 이 몸이 한가해지리오 (차생안득차신한 此生安得此身閑)

 

천운 스님과 함께 지금의 대흥사를 일군 회주 보선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봉향각(奉香閣)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영암이 고향이었던 보선 스님은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2학년 방학 때 고향에 내려 와 도갑사를 찾았다. 스님의 법기를 단박에 알아챘던 것일까. 천운 스님의 일언이 떨어졌다. “머리 깎아라.” 별다른 사념도 없이 대답했다. “예.” 그 자리에서 삭발 후 승복을 받았다. 승복을 입자 편안했다. 기분이 좋았다. 며칠 후 승복 입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집안사람들이 놀라 “미쳤냐?”며 나무랐다. 단, 도갑사 신도였던 어머니만은 예외였다. “애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둬라!” 이후 방학만 되면 도갑사에 올라가 공부했다. ‘반야심경’을  공부하는 순간 한 생각이 스쳐갔다. ‘이 공부면 됐지 다른 공부 해 뭣 하는가!’ 고등학교 졸업 직후 정식으로 출가 해 사문의 길을 걸었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온 곳도 대흥사였다. 그 때 머문 곳이 지금의 선방이다. 고등학교 때 하루 묵은 곳이 지금의 주지실. 보선 스님은 주지 임기 동안 이 전각에 머물렀다. 전생부터 이어진 숙연이리라.


스님이 손수 낸 차 한 잔에도 초의 선사의 정취가 가득한 듯하다. 대흥사는 차의 성지로 유명하다. ‘다선일여(茶禪一如)’를 추구하며 차를 중흥시킨 초의선사가 주석했기 때문이다. 초의 선사와 다산, 추사, 그리고 자하 신위, 연천 홍석주 등의 당대 거장들과의 교류는 불유선의 사상적 교유였기에, 대흥사를 18세기 이후 학문과 예술의 중심 도량이라 평하는 것이리라. 초의 선사의 차를 ‘음풍농월’의 취미 정도로 알면 곤란하다. 땅 끝 일지암에 머물면서도 격랑의 시대를 냉철하게 파악하며 사회 변화를 도모했던 실천가였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보선 스님

 


보선 스님이 이곳에 첫발을 내디뎠을 당시 도량 곳곳에 차를 심었던 연유도 초의 선사의 뜻을 이어야 한다는 심안에 기인했을 터. 다향(茶香)에 배인 초의 선사의 여정을 풀어 놓으리라 예상했지만 뜻밖에도 보선 스님은 안타까움의 일언을 전했다.


“다성(茶聖)으로 추앙받고 있는 초의 스님을 모르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초의 선사 바로 윗 조사이신 연담 유일 선사를 아시는 분은 드뭅니다.”


그렇다. 대흥사를 빛낸 인물이 초의 스님 한 분인가? 숲 속에 조성된 부도전은 대흥사의 위용을 말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서산 휴정 스님 문하에는 걸출한 4명의 제자 송운 유정(사명대사), 소요 태능, 정관 일선, 그리고 편양 언기가 있었다. 서산 스님은 입적 직전 가장 나이가 어렸던 편양 언기에 법통을 전했다. 현재 조계종의 대부분 스님이 편양 언기 문하 후손이다.


편양 언기의 법은 풍담 의심 스님에게 전해졌다. 풍담 스님은 대흥사 1대 조사다. 이후 취여 삼우, 월저 도안, 환성 지안을 거쳐 연담 유일, 초의 의순까지 대흥사 13대 조사가 출현해 부처님 마음을 전했다.


또한 환성 지안 스님으로부터 경론을 수학해 30대에 이르러 경을 통찰한 만화 원오 스님을 1대 강사를 시작으로 연해 광열, 영곡 연우를 거쳐 범해 각운에 이르기 까지 13명의 대강사가 부처님 말씀을 전했다. 편양 언기와 소요 태능의 선기와 덕화에 기인한 인물들이다. 13대 조사, 강사 출현의 시작은 서산 대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서산 스님은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내 의발을 호남 대둔사(대흥사 전 사명)로 옮겨라.” 묘향산에서 일생동안 법을 폈던 스님이 굳이 자신의 의발을 대둔사로 전한 연유는 아직도 분명치 않다. 다만, 서산 스님의 유언에서 그 일면을 엿볼 뿐이다.


서산 스님은 두륜산 대둔사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만년 동안 훼손되지 않을 긍장(亘長)의 구역이며, 삼재가 들어오지 않을 곳이며, 부처님 법이 흥할 곳이다.”


일제 강점기, 6·25 한국 전쟁 속에서도 대흥사는 화를 입지 않았다. 숭유억불 정책으로 퇴락의 길로 내몰렸던 조선 당시 불교계에 새 힘을 불어넣었던 사찰이 대흥사다. 서산 스님의 법과 의발이 모두 묘향산에 머물고 말았다면, 편양 언기의 선맥이 풍담 의심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조계종 선맥은 어찌 되었을까! 서산 스님의 혜안이 빛나는 대목이다.


“죽음을 앞두고 펼쳐 낸 풍담 스님과 유일 스님의 선시 한 편만 보아도 번뜩이는 선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신령스런 이 물건이여/ 죽음에 이르니 즐겁도다/ 나고 죽음에 표정 없으니/ 겨울 하늘에 뜬 달이 더욱 밝네.’ 눈앞에 놓인 죽음마저 찬미하며 생사를 초탈한 기개가 확연히 보이지 않습니까.”


보선 스님은 죽음 앞에 초연했던 또 한명의 선사 유일 스님의 시 한편도 전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한갓 낮과 밤이 바뀌는 것과 같은데/ 어찌 슬퍼하겠는가’


“유일 스님은 조선 후기 퇴락의 길을 걷고 있었던 불교에 활기를 불어넣은 분입니다. 7세에 이미 천자문과 통감, 맹자를 꿰뚫었던 신동이었다고 합니다. 18세에 출가 해 교학 연구에도 매진하며 30년 동안 화엄경을 설하셨습니다.”


교구본사로서의 명실상부한 대흥사를 남도 땅에 우뚝 세워 놓은 스님이 보선 스님이다. 사찰 정비 불사가 거의 마무리 된 시점. 보선 스님의 안타까움 이면에는 선교를 일으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선원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강원이 개원 되면 동백꽃 만개하듯 교학도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주지스님도 여기에 역점을 두고 사중을 살피고 있습니다.”


서산 대사 의발 전수 이후 제2의 대흥사 중흥 원력을 품고 있는 듯하다.


“올 봄 대흥사는 서산 대사 제향을 60여년 만에 재현했습니다. 가을엔 수충사에서 제향을 올려야 하는데 길이 막혔으니 통탄할 뿐입니다.”

 

선에 이어 교학도 꽃 피워
13대 조사 위용 되찾을 터
‘유럽 소풍’에 통일교훈 있다
통일대비 불교교류 확대 절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아 평양과 서울 수복에 공을 세운 스님이 서산 대사 아닌가. 조정은 대흥사에 서산 휴정을 모신 표충사(表忠祠)를 세웠고, 이를 계기로 묘향산에 수충사(酬忠祠)를 세웠다. 정조 이후 대흥사 표충사와 묘향산 수충사에서 국가제향으로 매년 봄, 가을 치러졌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제향은 폐지됐다. 올해 재현된 제향도 국가제향이 아닌 대흥사 주도의 제향이었다. 언제쯤이나 서산 대사의 국가제향제가 올려 질 지 아득하기만 하다.


보선 스님의 ‘통탄’은 단순히 제향에 국한된 것만은 아닌 듯하다. 남북교류를 통해 한 민족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강변을 에둘러 표출한 것이리라.


“1989년 세계를 놀라게 한 ‘유럽 소풍’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갈라놓은 철조망 한 조각을 없애며 미래를 바라보는 창문을 열었다’고 선언한 휼라 흐르노 헝가리 외무장관은 ‘유럽을 분단시킨 철조망과 장벽이 어느 날 사라지길 기대한다’고 했지요. 그 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당시 공산권 국가인 헝가리와 자유민주주의 국가 오스트리아 국경 가까이 헝가리 도시 소프론이 자리하고 있었다. 양국의 외무부장관은 두 진영을 가로막은 철조망 한 조각을 상징적으로 잘라 냈다. 몇 달 후 국경 검문소가 3시간 동안 개방되었고, 그 시간동안이나마 국경 지역을 자유로이 왕래하며 소풍을 즐겼다. 동독 사람들은 이 소풍을 탈출의 기회로 삼으며 망명길에 오른다. 헝가리 소프론에서 일어 난 소풍 사건이 공산권의 자유의지에 불을 당겼다. 그 유명한 ‘유럽 소풍’이다.


“금강산 관광은 단순한 관광길이 아닙니다. 서로의 문화와 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학습장이기도 합니다. 남북을 이었던 뱃길은 ‘유럽 소풍’보다 더 큰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습니다. 피살 사건으로 그 길이 막혔던 것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시적이었어야 했습니다. 그 길이 다시 열려야 한다고 봅니다. 독일 통일도 준비된 통일이었습니다. 서독의 동방정책 시작 이후 동서독은 통행 협정 체결, 우편, 전화, 과학, 체육,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협력과 교류를 실천했습니다. 서독의 동독에 대한 대규모 경제 원조도 통일의 밑거름이었지요.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단절과 갈등만 거듭하면 통일은 요원합니다.”


정치적 문제로 남북교류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불교계라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교교류만큼은 갈등국면 속에서도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보선 스님은 4년 동안의 중앙종회 의장을 역임하며 조계종의 새로운 희망도 보았다고 했다. 조계종 쇄신위원회가 추진 해 상정한 사찰운영위원회법, 사찰예산회계법, 선거법 등의 종단 쇄신 입법안이 난항 속에서도 중앙종회를 통해 결국 가결됐기 때문이다. 사찰 운영의 재가자 참여와 사찰재정 투명, 공명선거를 뼈대로 한 이 법이 정상 작동되면 조계종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하지만 승풍쇄신의 의지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행보였습니다. 사부대중이 함께 하는 조계종 구현이 그리 멀지 않다고 봅니다.”


다탁에 놓인 찻잔에 녹차에 이어 황차가 담겨졌다. 보선 스님의 의미 깊은 일언이 다향과 함께 피어올랐다.


“이 차를 사부대중 모두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저부터 분향각 문을 활짝 열어 놓고자 합니다.”

 

 

▲분향각 전경. 대흥사 회주 보선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분향각은 연리근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갑자기 꽉 막혔다. 스님의 의중이 간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흥사 차는 이미 전국의 다인들로부터 사랑 받고 있지 않은가! 무엇을 나누고 싶은 것일까?


“세파에 억눌려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 번뇌에 쫓겨 글 한 줄, 시어 하나 선택할 수 없어 벼랑 끝에 서 계신 문인. 시대 흐름을 꿰뚫어 새로운 철학을 정립해 보려는 사상가. 한 폭의 그림 완성하고 다음 작품을 위해 푹 쉬고 싶은 화가. 그들 모두를 대흥사 부처님 품안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서두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작했지요. 몇 분은 와 계십니다. 공간이 있으니 언제 어느 때든 대흥사를 찾으시면 작은 자리라도 나눌 참입니다. 산사의 바람 소리 한 점만 안고 떠나도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원융무애한 도량을 꿈꾸고 있음이다. 승재가, 세간출세간의 경계를 허문 대흥사를 가꾸어 보겠다는 큰 원력이다. 이 공간, 이 도량에서 다 함께 화엄의 세계를 조성해 가자는 제안이다. 보선 스님의 도량은 그만큼 넓고도 깊었다.


세찬 바람이 문전을 두드린다. 보선 스님이 구축하고 있는 도량에 ‘자신’의 자리도 있느냐고 말이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보선 스님

1946년 전남 영암 출생. 은사 천운 스님. 1966년 수계. 총무원 호법부장. 제 11, 13, 14, 15대 중앙종회 의원. 제13대 중앙종회 부의장. 제14대 후반기, 15대 전반기 중앙종회 의장. 대흥사 주지. 현재 대흥사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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