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견 지음 / 연인M&B

조선척불시대를 맨몸으로 타파한 조선불교의 중흥조이자, 오늘날 한국불교 교단의 존립 기반을 세운 서산대사(1520~1604). 스님을 조명하는 대하소설 <서산>이 출간됐다. 스님이 열반한지 407년만이다. 저자 신지견은 “대흥사 주지 범각스님이 한국불교가 ‘서산 불교’이자 우리 불교계를 이끌고 계신 모든 스님들이 서산대사의 적손임에도 이름마저 잊혀져가고 있으니 ‘어떻게 하든 서산대사를 알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문학작품이어야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집필동기를 밝혔다.

이에 범각스님은 “이순신 장군의 성역화 사업과 비교가 안될만큼, 서산대사는 우리 민족이 국권을 잃을 뻔했던 1592년 임진왜란에서 큰 공헌을 세웠음에도 공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웠다”며 소회를 밝혔다.

서산스님 삶·사상 역사적 조명

조선불교중흥조…한국불교 기반

“의승군 공덕 폄하·왜곡”

소설 <서산>의 출간에 찬사를 보낸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서산대사 선양사업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표명했다. 총무원장 스님은 “숭유억불의 사회 분위기에서 대부분의 승군들은 나라로부터 보상은커녕 오히려 그 공로가 폄하되고 왜곡되어 잊혀져온 것이 우리의 역사였다”며 “이름없이 순국한 의승군의 위령제 또한 국가 주관으로 정례화해야 함이 선진국을 지향한 나라로서 위상을 높이는 일이며, 나아가 국가적 차원에서 서산대사 유의처의 성역화 사업과 대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온 국민이 다같이 공감할 수 있는 교육적 프로젝트가 영구히 지속돼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소설 <서산>을 지은 소설가 신지견씨(사진 왼쪽)와 그의 집필을 곁에서 도운 해남 대흥사 주지 범각스님이 지난 22일 갓 출간된 소설 제1부 5권을 들고 상경했다. 10여년째 두터운 인연을 맺고 있는 스님과 소설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서산대사가 국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길 바란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 22일 범각스님과 작가 신지견, 신현운 출판사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말하는 소설 <서산>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설 <서산>은 ‘국가’와 ‘권력’에 대한 성찰로부터 시작된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불공평과 구조적 기원이 국가에 대한 그릇된 개념과 권력의 오용이라고 보는 근거다. 신 대표는 “국가란 공동선이 실현되는 하나의 울타리”라고 전제하고 “한국의 역사는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진 사람이 없이, 불공정한 룰과 불공정한 경쟁을 지속적으로 강요하는 정치 양태를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산스님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칼을 들고 일어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우리 모두의 국가임을 보여줬다”며 “이는 공동선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범각스님은 권력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권력이란 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지 국가가 권력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보여준 서산대사의 국가는 권력이 없는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서 있는 우리들의 국가였다. 임진전쟁이라는 국가의 존망 앞에서 칼을 잡고 일어선 것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화된 권력을 위하자는 것이 아니라 나라 안의 모든 백성들을 차별없이 품안에 똑같이 안고 있는 순수한 우리들의 국가를 위해서 일어섰던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3년 전 땅끝마을 대흥사에서 대하소설 <서산>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저자는 “조선은 성공한 쿠데타에서 시작된 왕조였고 여기에 전 왕조였던 고려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불교였는데, 왕조의 말기적 사회상과 겹쳐 태동한 신유학이 이성계의 쿠데타 세력과 영합해 비정상적으로 정치 이데올로기의 옷을 입혀가면서 나타난 것이 척불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불교를 희생양으로 벌이는 조선 유생들의 정치양태가 오늘날 우리 현재의 정치행태에 오버랩으로 나타나면서 서산사상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고심하게 됐다. “서산사상만 강조하다가 잘못하면 여느 불교 책을 긁어모은 내용이 될 것 같아, 과연 문학작품으로서 읽히는 재미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매달리게 됐다. 그래서 큰 틀의 픽션에다 역사적 상대주의 관점에서 서산대사의 행장을 바닥에 깔고 실제로 역사에 있었던 사실들로 바느질 하게 되었다.”

국가와 권력의 참된 의미 찾기

서산사상이 오늘날 던지는 화두

“국가차원 선양불사” 과제

소설 <서산>은 보편타당한 논리로 ‘국가란 무엇이냐?’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조선불교사를 표면에 드러냈다. 당시 시대상황과 연계해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재구성해 낸 내용이다. ‘있을 법한 이야기’란 ‘국가의 완전한 개혁’이다. 철학과 지도력이 부재한 집권층의 부패로 사회가 양분되어 북방 변경과 남쪽 바닷가에 발호하는 적들의 모습에서 오늘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했다. 권력이 부패하면 개혁세력이 움직이는 법. 소설 배경에 실제로 있었던 임꺽정과 정여립 사건이 전개되는데, 여기에 또 서산스님이 중심에 선 결사조직, ‘사사(沙社)’가 밝혀지면서 개혁의 움직임은 흥미롭게 전개된다.

소설 프롤로그에 실린 저자의 ‘일갈’은 지금 들어도 유효하다. “기량이 부족한 권력 주변에는 기량이 부족한 졸부들만 많아 옳은 것을 헌신짝 버리듯 팽개치고 ‘너 참 장한 일을 했구나’ 그러면서 거기에 빌붙는 자들이 많았으니, 여기 빌붙는 행위 속에 국가는 없고 개인의 영달만 있었다. 이걸 일러 ‘도투마리 잘라 넉가래를 만든다’는 것인데, 이 비겁하고 용렬한 행위가 후세에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을 쓰고 서슴없이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 국가를 졸때기 나라로 바꾸어 갔다.” 소설 <서산>은 제1부 5권으로 작가가 3년여에 걸쳐 집필했으며 제2부 5권은 이르면 2013년께 완간될 예정이다.

한편 지난 28일 표충사에서는 서산대사 탄신 491주년을 맞아 ‘서산대사 법요식’이 봉행됐다. 대흥사 주지 범각스님은 “대흥사 성보관에서 서산대사 제향 때 사용한 유교식 향례홀기가 발견됨으로써 정조임금 이후 해남 대흥사, 표충사와 묘향산 보현사 수충사에서 매년 서산대사 제향이 국가제향으로 모셔져 왔음이 확인됐다”며 “서산대사의 국가적 제향이 일제강점기에 폐지된 것이 해방 후 6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복원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나라의 큰 수치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불교신문 2716호/ 4월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