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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와 사명당

  • 임선규
  • 2009-12-28 오후 11:00:28
  • 1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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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는 일반 백성들 사이에 신통력을 지닌 도승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역시 도승으로 불리는 수제자인 사명당과의 에피소드는 오늘날까지도 민간신앙에서 널리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전승되는 일화들을 소개한다.


1. 내가 이 문 밖으로 나가겠는가, 들어가겠는가?


서산대사와 사명당과의 만남에 대한 일화가 참 재미있다. 참새는 독수리를 기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큰 인물의 스승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천하 영재를 만나기도 어렵지만 설령 영재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의 스승이 되어 가르치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서산대사와 사명당과의 만남도 스승과 제자로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서산이 없는 사명은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사명이 없는 서산도 마찬가지로 그렇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았을 때 70세가 넘은 서산대사는 앞장서서 승군을 모아 전쟁터로 나갔다. 그리고 스승인 서산 노스님의 뒤를 이어 전란이 끝날 때까지 일본과 강화조약을 완성하여 전쟁을 마무리 지은 호국의 성사가 사명대사이다.


사명당이 서산대사의 큰 가르침과 깨우침이 없이 어찌 그렇게 큰 국가의 대사를 거침없이 완수해냈겠는가. 32세의 젊은 부처와 56세의 늙은 부처가 묘향산 보현사 법당 문턱에서 첫 상면을 하게 된 것이다. 사명당은 서산대사에게 물었다. “스승이시여, 소승이 이 비둘기를 손 안에서 날려 보내겠습니까? 아니면 잡아 둘 것 같습니까?”


서산대사가 양 쪽 발을 법당 문턱에 양쪽으로 걸치고 말했다. “좋소. 내가 이 법당 문턱에서 밖으로 나올 것 같소? 아니면 안으로 들어갈 것 같소?” 사명당이 먼저 대답했다. “대사께서는 분명히 밖으로 나오실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렇소?” “스승님의 제자가 멀리 황악산 직지사에서 찾아왔는데 어찌 제자를 보고 맞이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실 수 있겠습니까.”


서산대사는 마음 속으로 감탄했다. "분명 황악산의 황룡이 묘향산을 찾아왔구나." 서산대사도 대답했다. “출가 사문이 어찌 살생을 하겠는가?”


서산대사는 물었다. “어디로 왔는가?” 사명당은 말했다. “옛 길로 쫓아 왔습니다.” “어떤 길이 옛 길인가?” “예, 부처님과 그동안 깨달음을 이루셨던 역대 조사스님들이 밟아오던 길이 그것입니다.” 서산대사는 큰 소리로 다그치듯이 말했다. “어찌 부처가 세상에 나온 적이 없는데 어느 곳에 밟던 길이 있던가?” “스승님께서는 어찌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지 않는 길만 보시고, 항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출현하시는 도는 보시지 않으십니까?”


다시 서산대사는 물었다. “그래, 밟고 오던 옛 길에 돌이 많지 않았던가?” “예, 부처님이 다니시던 길인데 어찌 돌이 있겠습니까.” “그래, 남의 발자국을 더듬고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겠구먼.”


서산대사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어느 절에서 있었는가?” “예, 황악산 직지사에서 신묵 큰스님을 모시고 공부했습니다.”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단번에 자신의 성품을 찾으면 직지인심 견성성불 할텐데 무엇 때문에 수고롭게 먼 길을 찾아 이곳까지 왔는가?”(이 말은 직지사에서 진리를 찾아서 깨달을 일이지 수고롭게 여기까지 왔느냐는 질문)


“묘한 향기를 따라 서산에 스승을 찾아 온 것이 해로울 것이야 있겠습니까?” “대장부가 스스로를 하늘을 찌를 큰 뜻이 있거늘, 어찌 남의 그림자만 쫓아다니는가? 이제는 부처가 다니던 길을 따라 다니지 말라.”


사명스님은 귀가 번쩍 트이고 눈이 밝아졌다. 갑자기 꿈 속에서 깬 듯이 단번에 전광석화처럼 머릿속에서 큰 빛이 지나갔다. 서산대사가 다시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왔는가?” 사명당은 말없이 일어나 서산대사의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제자리로 돌아와서 말했다. “이렇게 왔습니다.” 그리고는 세 번 절을 하고 서산대사의 발에 머리를 갖다 대고 제자로서의 최고의 예경을 갖추었다. 서산대사는 사명스님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어찌, 우리의 만남이 이렇게도 늦었단 말인가. 내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 되었도다.” 서산대사의 입실(入室) 시험은 이렇게 차원이 높은 선문답(禪問答)이었으나 사명스님은 멋지게 통과하였다.


2. 사명당과의 도술 시합


사명당이 금강산에서 서산대사가 도통했다는 소문을 듣고 서산대사를 시험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사명당은 얼굴도 잘 생기고 기골이 장대하여 장군처럼 생겼다. 그는 수염을 잘 길렀다. 사내 대장부이기 때문에 수염을 기르고, 출가 대장부이기 때문에 머릴 깎는다고 하였다.


사명당에 비하여 서산대사는 몸집이 크지 않았다. 겉모습은 사명당이 훨씬 도사같이 보였다. 사명당은 서산대사를 시험하기 위하여 도술을 부려서 물고기로 변하여 묘향산 보현사 경내에 있는 연못 속을 헤엄치면서 서산대사를 향해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아상(我相 : 깨달음을 얻어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 자가 어찌 나를 보겠느냐?”라고 하였다.


서산대사가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고 있구나. 고얀 놈! 누구를 시험하려고 하느냐? 어서 너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겠느냐?”하고 주장자로 살짝 물고기의 눈을 건드렸다. 그러자 물고기는 사명당으로 변했다. 사명당은 서산대사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자신의 오만한 행위에 대해서 사죄를 했다. 그리고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사명당의 눈덩이는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3. 바늘을 국수로 만든 도술


사명당은 서산대사에게 도술을 겨루어보자고 청했다. 서산대사도 응했다. 사명당이 그릇에다 바늘을 가득 담았다. 갑자기 바늘이 먹음직한 국수로 변했다. 사명당은 그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사명당은 먹다 남은 국수를 서산대사에게 먹으라고 권했다. 서산대사는 “찬 물도 위 아래가 있는 법인데, 어른에게 먼저 음식을 권해야 하거늘 어찌 먹다가 남은 음식을 먹으라고 권한단 말이요”라고 사명당을 나무랐다.


도술을 겨루는 시합이니 서산대사는 그 먹다 남은 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다시 입안에서 바늘을 뱉어놓았다. 사명당은 바늘을 국수로 만들어 먹는 도술은 배웠지만 먹었던 국수를 다시 바늘로 뱉어놓는 도술은 알지 못했다.


4. 빗방울이 하늘로 거슬러 올라가는 도술


사명당은 마지막 자신의 최고의 도술로 서산대사와 겨뤄보고 싶었다. 사명당은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하고 두 손을 모아 하늘의 기운을 모았다. 그러자 맑고 화창한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벼락 천둥이 치면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산대사는 크게 칭찬을 했다. “소문대로 사명당은 놀라운 도술을 가지고 있군요.” 사명당은 마음 속으로 이번에야말로 서산대사를 이기는 것 같아 기뻤다. “이젠 대사님의 차례입니다. 저 비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재주가 있습니까?” 서산대사는 엎드려서 두 손을 땅에 짚고 주문을 외웠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그러자 무섭게 내리던 비가 뚝 그치더니, 빗방울이 다시 하늘로 거슬러 올라갔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이름 모를 예쁜 새들이 지저귀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했다.


5. 달걀쌓기

 

서산대사는 사명당에게 3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청소하는 일과 나무하는 일만 시켰다. ‘오늘이나 도를 가르쳐주려나’ 매일 이런 생각을 하며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사명당은 불만이 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서산대사가 자신보다 잘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산대사의 재주는 밤낮으로 앉아서 참선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法床에 올라가 법문을 할 때에도 별로 아는 것이 없어서 그런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禪法門만 아주 짧게 하고는 소리만 ‘악’ 지르고 내려오곤 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서산대사가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스승으로 보여졌다.


어느 날 사명당은 달걀을 방바닥에서부터 하나씩 쌓기 시작해서 한 줄로 천장까지 쌓아올렸다. 그리고 서산대사를 향해서 이상한 미소를 보냈다. 서산대사는 달걀을 천장에서부터 거꾸로 붙여 내려와 한 줄로 방바닥에 닿게 하였다. 사명당이 밖으로 나와보니 공중으로부터 달걀이 거꾸로 쌓아 내려와 있었다.


6. 달걀쌓기 대신 삼키기


어느 마을에 내려갔을 때, 달걀을 외벌 줄로 쌓는 도승들이 왔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달걀을 여러 꾸러미 가지고 모여 들었다. 달걀을 위에서 내려 고인다는 서산대사의 재간을 구경하고 싶기는 하나 하도 점잖아 보이는 노승이라 그런 청을 할 수가 없어서 치가리는 것이라도 구경하자고 그 제자에게 청했다. 사명당은 쾌히 ‘그러마’ 하고는 달걀을 하나하나 빠개서 입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아차아차 하고 보는 동안에 몇 꾸러미를 다 삼킨 사명당은 마침내 손을 들어 배에서 목까지 금을 그어 보이며 ‘이 속에 가렸다’고 했다. 사람들은 달걀 몇 십 알을 단 무릎에 삼키는 것만으로도 희한한 재간같이 구경했다는 이야기다.


7. 환속을 거부한 사명당


사명당은 술을 말로 마실 수도 있고, 한 마리 돼지를 먹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기 스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도록 삼가며 서산 곁에 모시는 양을 보면 그 팔척장신의 위장부가 마치도 어버이 곁에 감겨도는 어린 자식같이 귀여운 태가 보이기도 했다. 그런 때의 서산에게는 더욱더 어쩔 수 없는 무게가 느껴지기도 했다.


왕 선조는 사명당에게 “네가 머리를 기르고 세상에 나온다면 나라에 중히 쓰이리라”고 하여 환속을 권했다. 이때 사명당은 “중도 이 나라의 백성이므로 신은 역시 한 중으로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하는 대답으로써 환속하기를 거절했다.


사실 그는 스님 그대로 7년간에 걸친 국난에 헌신적으로 싸우고 일했다. 이듬해인 계사년 사월에 한양을 회복한 후부터는 연로한 스승을 대신하여 도총섭이 되었고 마침내는 일국을 대표한 외교가로 활약하게 되었던 것이다.


8. 왜구의 침략을 미리 알다


서산대사는 불도를 닦는 한편 학문과 무예도 익혔다. 그래서 군사를 다루는 병법이나, 천문 지리에도 밝아 그 이름이 온 나라 안에 떨쳤다.


어느 날 밤, 서산대사가 잠을 자는데 꿈을 꾸었다. 수십만의 왜구들이 벌떼처럼 부산의 동해 앞바다에 쳐들어와서 삽시간에 성을 함락시켰다. 임금이 왕궁을 버리고 피난 가는 모습도 보였다. 서산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다.


전쟁이 나자 제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으니 우리 승려들이 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몽둥이라도 하나씩 들고 나를 따르라. 왜적을 물리쳐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살리자.”


사명당은 일찍이 서산대사에게 배운 제자로서, 금강산의 유점사에서 도를 닦고 있었다. 제일 먼저 달려온 사명당이 합장을 하며 말하였다. “늙으신 스승님께서 전쟁터에 나가 왜구와 싸우시는데 이제 저도 웬만큼 수행이 완성되었음으로 스승님을 도와서 왜적을 무찌르겠습니다.”


“불도를 닦는 출가 사문이 내가 살자고 전쟁터에 나가서 적을 살생하는 것은 취할 바의 도리가 아니나, 나라를 구하는 일인데 어찌 바라만 볼 수 있겠는가.” 서산대사는 이렇게 말하고 제자 사명당의 두 손을 꼭 잡고 절로 돌아왔다. 정유년 10월을 맞았다. 밤하늘의 별빛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은 <금강경>을 외우다가 밖으로 나와 뜰을 거닐었다. 서산대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남쪽 하늘에 이상한 빛을 띠고 있는 걸 보니, 왜구들이 또 우리 조선을 침략할 징조이구먼.” 사명당도 맞장구를 쳤다. “저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왜놈들이 임진년에 당한 것을 앙갚음하려고 군사를 일으키려는 징조가 틀림없습니다.”


서산대사는 사명당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늙었으니, 젊은 자네가 나서서 나라를 구하도록 하여라.” 이튿날 아침, 서산대사는 사명당을 데리고 서울로 향했다. 임금님을 만나 이 사실을 미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서산대사는 엎드려 임금에게 절하였다.


“소승이 하늘의 기운을 살피니 왜구가 임진년에 당한 것을 보복하려고 바다를 건너오고 있으니 큰 일입니다.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대사께서 나라를 구해 주시오. 임진년에 대사의 신통력으로 왜적을 물리쳤듯이...”


“소승의 제자 가운데 사명당이란 대단한 스님이 있는데, 팔만대장경을 모두 외울 뿐만 아니라, 무예도 능하고 둔갑술은 물론 천지의 조화까지도 식은 죽을 먹듯이 하오니, 사명당을 왜국의 사신으로 보내 왜왕의 항복 문서를 받아오도록 하면 앞으로 후환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훌륭한 스님이 계셨다니 짐이 미쳐 몰랐습니다.”


서산대사는 사명당을 임금님에게 소개하였다. 이렇게 하여 사명당은 강화사절로 임명되어 적국인 일본을 가게 되었다.


9. 서산대사의 비결


사명당이 배를 타고 일본을 향해 떠날 때였다. 서산대사는 부적과 <금강경> 한 권을 건네주며 말하였다. “이 부적은 신비한 능력이 있으니 왜국에 들어가 만일 위급한 일을 당하면, 부적을 들고 하늘을 향하여 두 번 절하면 재앙을 면하리라. 그리고 왜왕이 <금강경>의 내용을 시험할 것이니 배 위에서 심심할 때 한 번 읽어보아라. 부디 큰 공을 세우고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 그대와 나의 인연은 오늘로써 끝났다.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사명당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 조정에서는 조선의 생불이 사신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진짜 생불인지 시험을 하기로 했다. 현소라는 승려가 묘안을 제시하였다. “생불이 오는 길에 잔뜩 쓴 병풍을 양쪽에 세워놓고 그 사이로 말을 달리게 한 다음, 그 병풍에 씌어진 글자를 외워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자가 틀림없는 생불이라면 병풍의 글씨를 모두 암송할 수 있겠지만, 엉터리 중이라면 외우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외지 못한다면 목을 베어도 후환이 없을 것입니다.”


왜왕은 대궐로 통하는 길 양편에 어마어마하게 긴 병풍을 세웠다. 그 병풍들은 다같이 360폭이나 되어 길이가 사오 리나 되었다. 드디어 저 멀리에서 사명당이 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글귀를 외기 위해서 말을 늦추거나 뒤돌아보지 않았다. 사명당이 마지막 병풍 앞에 말을 멈추고 내렸다. 그는 태연하게 왜왕 앞에 걸어가 앉았다. 왜왕은 사명당에게 물었다.


“저 병풍에 새겨진 글귀들을 모두 외웠습니까?” 사명당은 목청을 가다듬고 병풍의 글귀를 외기 시작했다. 병풍에 씌어진 글귀를 모두 외는 데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사명당이 외우는 것을 마치자 왜승 현소가 “왜 병풍 두 폭의 글귀는 빠뜨리고 외지 않느냐?”하고 다그쳐 물었다. 사명당은 태연히 대답했다. “없어서 보지 못한 글귀를 외우라는 것은 억지가 아니오.” 왜왕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병풍에 분명히 적혀있는 글자가 없다고 생떼를 쓰는데 여봐라, 어서 가서 그 병풍을 가져오너라.” 그 병풍의 중간쯤의 두 폭이 바람에 접혀있어 글귀가 눈에 띄지 않았다. 사명당이 외지 않은 글귀는 바로 바람에 날려 접혀진 그 부분이었다. 사명당이 외운 병풍의 내용은 서산대사가 조선 땅을 떠날 때 부적과 함께 주었던 <금강경>을 붓으로 쓴 병풍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사명당을 생불이라 불렀다.


얼굴이 새파래진 왜왕은 신하들을 불러 물었다. “저 자가 조선의 생불인 것이 틀림없는데,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느냐?” 머리가 좋기로 유명한 한 신하가 입을 열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죽여야 후환이 없을 것입니다. 신라 때 박제상을 쇠판에 태워 죽였듯이 사방이 무쇠로 된 무쇠집을 지어서 그 속에 가두고 불을 때면 아무리 생불이라고 하더라도 살아날 수 없을 것입니다.”


왜왕은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즉시 무쇠집을 지었다. 왜왕은 사명당을 무쇠집으로 유인하여 얼른 문을 잠가버렸다. 왜왕은 그 무쇠집에 장작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폈다. 시뻘건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무쇠집은 달아올라 벌건 불덩어리가 되어갔다. 왜왕은 생각했다. “생불이 아니라 철불이라도 녹아서 형체도 없어지고 말았을 것이야.” 왜왕은 무쇠집이 식어 문을 열도록 하였다. 무쇠집 안을 쳐다본 왜왕, 신하들은 모두 기절할 듯이 놀라 입이 벌어져 오므라지지가 않았다.


타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명당의 수염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부릅뜬 양 눈 위의 눈썹에는 서리까지 서려 있었다. 사방의 벽과 천장에는 얼음이 쌓여 있었다. 사명당은 호통을 쳤다. “내가 듣건대,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나무가 귀하다고 들었다. 아무리 나무가 귀하기로서니 일국의 사신을 이렇게 추운 방에다 얼어죽게 할 작정인가.” 왜왕은 얼굴이 벌개졌다. 사명당은 무쇠집에 들어가자마자 스승인 서산대사가 주었던 부적을 붙였다. 부적에는 ‘霜, 雪, 氷’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사방의 벽에다 ‘서리 霜’이라는 글자를 붙이고, 천장에다는 ‘눈 雪’이라는 글자를 붙이고, 방바닥에는 ‘얼음 氷’이라는 글자를 붙였다. 사명당은 왜왕을 향해 ‘물 水’를 써서 던지면서 고함을 쳤다. “내가 몇 차례 너희들이 나를 해치려고 했던 술수에 대해서 참아왔다.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지금 당장 항복 문서를 써서 바치지 않으면 일본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


비가 쉬지 않고 계속 쏟아졌다. 시내는 강이 되고. 강물은 넘쳐서 들과 산이 잠기게 되었다. 왜왕은 사명당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다. 왜왕은 ‘항복(降伏)’이라고 붓으로 글자를 써서 바쳤다. “고얀 놈, 지난 임진왜란 때 조선에 입힌 피해는 생각지도 않고 항복한다는 글자만 쓰면 되는 줄 아는가. 너희들이 조선인의 코와 귀를 베었으니 나는 한맺힌 조선 백성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 너희들의 가죽을 벗기겠다. ” “항복 문서에다 해마다 너희 나라의 젊은 남자의 가죽을 3백장씩 조선에 바치겠다고 써라. 그것도 젊은 남자들의 가죽으로 말이다. 또 구리쇠 1천 근과 놋쇠 3만6천 근씩 매년 바치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써라. 나의 명령을 거역하면 왜왕 너의 가죽부터 벗기겠다.”


왜왕은 사명당이 시키는대로 항복 문서에 썼다. 사명당은 서쪽 하늘, 서산대사가 계시는 조선 땅, 묘향산을 향해서 세 번 절을 하였다. 그러자 비가 멈추었다. 왜왕은 약속한 첫 해가 되어 일본 젊은 남자들의 가죽을 벗긴 3백장과 구리쇠와 놋쇠를 바쳤다. 왜왕은 사명당에게 눈물로서 지난 날 임진왜란 때의 만행을 참회하고 용서를 빌었다. “생불님, 어찌 살아있는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일을 차마 사람이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비라고 들었는데 저희들에게도 자비를 내려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합니다.”


“옳다. 어찌 인간이 인간의 가죽을 벗기는 일을 할 수 있단 말이냐. 그 일을 임진년에 네가 조선 백성들에게 저질렀던 일이 아니더냐. 너희가 지난 날 잘못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니 항복 문서의 내용을 없었던 걸로 하겠다. 앞으로는 부처님의 착한 제자가 되거라.”


그래서 일본은 불교를 깊게 숭상하는 나라가 되었다. 집집에다 불상을 모시고 부처님께 절을 하였다. 사명당은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간 3천 여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 후 일본에는 남자를 낳으면 가죽을 벗겨서 조선에 바쳐야 한다는 소문이 퍼져 여자아이만 낳아 길렀고, 전국에 있는 구리쇠와 놋쇠를 모두 거두어 조선에 바치다 보니 무기를 만들 재료가 없어, 아예 조선을 침략하겠다는 생각조차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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